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해가 저물어 간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올해는 뭔가 좋은 일이 있을꺼야 라는 생각에 희망을 가져보지만 연말만 되면 아 한일도 없이 또 한해가 지나가는 구나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개인적으로 보면 처음으로 맞이하는 60년이란 세월을 돌아보는 뜻깊은(?) 한해 였지만 혹시나는 역시나로 그저 다른때와 같은 또 한해의 마지막은 아닌지하지만 분명 우리 대한민국에는 오천년 역사속에 많은 국가들이 존재했었고 때론 분열로, 때론 통일국가로 우리의 얼을 이어왔다.그 수많은 역사속에 그 어느때 못지 않은 큰 의미로 한 획을 그은 해가 아니었을까한 방송사의 뉴스로 시작된 사건은 수많은 국민들의 손에 촛불을 들게 했고 촛불든 그 손들이 광화문으로 몰려들면서 진정한 국민의 힘은 철통같은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음을 만 천하에, 우리나라의 집권자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었고 한편으론 민주주의의 진정한 힘을 전 세계에 보여준 대한민국의 수치이자 자랑스런 한해가 아니었을까그렇게 시작된 문재인 정부의 시작은 그 어느 정권초보다 높은 인기를 구가하며 한발한발 나아가고 있다.여당으로 무소불위를 구가하던 새누리당은 당명마져 바꾸며 새로운 내일을 위한 도전을 시작했고, 야당의
지난 12월 16일 한국자유총연맹서대문구지회의 ‘2017년 자유수호 사업실적평가 보고대회에서 운영위원장으로 봉사하는 김영수 회원이 연맹의 최고의 상인 자유평화상의 은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었다.자유평화상은 연맹에서 수여하는 가장 영예로운 상으로 자유민주주의의 신장 및 봉사활동 그리고 연맹발전에 헌신한 공적이 가장 우수한 자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김영수 위원장은 22년간 헌신적인 노력을 통해 회원들과 함께 지역사회 봉사활동에 임해 연맹의 가치 홍보와 위상을 드높였다.1995년 6월 남가좌2동 분회원으로 가입한 김영수 위원장은 남다fms 지도력으로 41명의 회원을 영입하는 동 조직배가운동은 물론 회원의 정예화를 위해 투철한 국가관과 사명감으로 자유수호와 국민통합을 위해 혼신의 노력으로 월례회에 60명 이상 참여하는 동분회로 만들었다.또한 2007년부터 회원들의 활동을 사진으로 직접 찍은 후 회원들의 개인앨범을 제작하여 전달하는 등 깊은 관심으로 회원들이 자긍심과 주체성을 갖고 참여토록 지도했다.또한 2012년도부터 폐지수거사업, 주민의 날 음식판매, 일일찻집 등으로 얻은 수익금으로 독거어르신 지원과 장학금 지원 등 지역사회에 연맹의 홍보와 회원영입에 앞장서기도 했
이 세상에는 셀 수 없는 고통이 있습니다. 제천 스포츠 센터 화재 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절규를 보십시오. 북한 지하 교회의 실상을 보십시오. 방글라데시로 피난온 로힝야 민족의 난민들을 보십시오. 노숙자들과 알코올 중독자들의 피폐한 삶도 보십시오. 가정이 깨어져 고통하는 이들을 보십시오. 그런데 성탄절날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기쁜 소식을 듣습니다. 인류의 모든 고통을 짊어지기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예수님은 범사에 우리들과 같이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고난 당하는 우리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멸시를 받고 버림 받았습니다. 간고를 많이 겪었고 질고를 아는 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고통 속에 있는 인류를 능
훈육을 영어로 표현하면 'Diciplin' 입니다. 즉 의지나 감정을 통해 바람직한 인격을 형성하도록 하는 교육 작용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조금 쉽게 말한다면 지식적인 것을 떠나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훈육의 기본 틀은 상과 벌에 의한 것이였습니다. 성적으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시험을 봐서 성적이 잘 나오면 부모들은 한결같이 자녀들에게 상을 주곤 합니다. 하지만 성적이 떨어졌거나 노력하지 않았을 때는 가차 없이 벌을 가함으로써 상과 벌의 상반된 모습을 잘 지켜왔습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부모의 눈에 자녀가 잘한 것보다 잘 못한 일이 더 잘 보입니다. 따라서 상보다는 벌을 더 많이 줌으로써 훈육의 무게가 벌로 기울어져 온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훈육은 곧 체벌이라는 의식이 깊이 박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를 코치하려면 훈육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코칭에서 훈육은 행동에 대한 훈육일 뿐 존재는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자녀를 훈육할 때 행동과 존재를 하나로 섞어서 훈육하는 것과 존재는 믿어주고 행동만 훈육하는 것은 자녀의 입장에서는 큰 차이가 납니다. 행동과 존재를 하나로 섞어서 훈
‘정직한 신문, 소통하는 신문, 신뢰받는 신문’을 모토로 구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구민들의 소리를 담는 신문으로사랑하는 서대문구민 여러분, 그리고 서대문신문을 사랑해 주시는 애독자 여러분,여러분들의 채찍과 사랑을 자양분으로 삼고 지내온 세월속에 서대문 구민여러분의 대변지로 거듭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서대문신문이 창간 27주년을 맞았습니다. 창간 27주년! 결코 길다고만은 할 수 없는 세월, 하지만 결토 짧다고만도 할 수 없는 세월, 그 세월을 서대문 구민들과 함께 해 온 세월이 어느 듯 27년이 되었습니다.이 긴 세월동안 서대문신문의 전통과 역사를 지켜오며 어려운 가운데서도 그 이름을 변치않고 잃지 않도록 1967년 고향을 떠나 서대문구 홍은동으로 이주하며 서울의 삶을 시작한 이래 한번도 벗어나 보지 못한 서대문구홍은동에서의 49년, 결혼하고 신혼살림을 차렸던 연희동에서의 2년, 결국 한번도 서대문을 벗어나지 않고 서대문 구민으로만 살아온 지난 51년의 세월하기에 서대문신문 발행인으로서의 삶은 내게 또 하나의 삶의 의미이기도 하다.서대문신문⋅⋅⋅서대문신문이 서대문구를 위하여, 서대문 구민들을 위하여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무엇이 진정 서대문구와 구민들을 위하는
객관성, 진실, 공공성을 추구하는 언론으로40∼50대 이상 세대라면 공유하고 있을 법한 기억들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 친구들과 논쟁을 하다가 ‘그거 신문에서 봤어’ 이 한마디면 그걸로 다툼의 승패가 결정지어졌지요. 신문은 그만큼 신뢰와 권위를 인정받았습니다.과거 신문, 방송, 잡지에 의한 단방향 정보전달 시대에서 이제는 누구나 미디어를 가질 수 있는 소셜미디어 시대가 왔습니다. 하지만, ‘신문에 나왔어!’ 라는 이 한마디가 주는 신뢰성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정직하고 소통하며 신뢰받는 신문’이란 목표 아래 정도언론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해 온 서대문신문의 창간 27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온오프라인에서 뉴스와 정보를 쏟아내는 수많은 매체들이 있지만, 서대문신문은 급변하는 언론환경 속에서 우리 서대문구를 비추는 맑은 거울로 언론 본연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해 왔습니다.지난 27년 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서대문신문이 앞으로도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역할을 잘 감당함으로써 주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지역언론으로 더욱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또 서대문신문이 오늘까지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독자 분들의 관심과 사랑이 있었기 때문일 것인데, 앞으로도 그 관심과
어두운 곳까지 훤히 밝히는 등불 같은 언론의 역할을안녕하십니까, 자유한국당 서대문갑 당원협의회 위원장 이성헌입니다.서대문구의 든든한 자치신문인 서대문신문의 창간 27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지난 27년간 서대문구의 모든 소식을 눈과 귀로 들으며 전달해주심에 언론이라는 본연의 사명을 다 하여 주신 조충길 대표님과 서대문신문 임직원 여러분 모두의 노고에 깊은 존경의 말씀을 전합니다.1990년 12월 창간하여 서대문구 지역을 위하여 가감 없는 구민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해주신 덕에 저 역시 정치적, 정책적으로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었음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또한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지역 주민과 소통하는 진정한 언론으로서 노력해주신 그간의 세월이 헛되지 않는, 영광의 창간 27주년은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며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합니다.최근 스마트폰과 더불어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청년들이 신문을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에 발 맞춰 서대문신문 역시 오랜 시간의 경험을 토대로 혁신하여 서대문구에 관심 있는 이들이 소식과 정보를 듣는 지역 언론으로서 발돋움하시기를 기대합니다.과거 일제강점기
충성, 공정, 친절, 중립 등 공직자가 지켜야 할 덕목에는 많은 것이 있지만, 청렴이 가장 소중한 덕목이 아닌가 한다. 사전 상으로는 ‘성품과 행실이 고결하고 탐욕이 없음’과 같이 열아홉 글자 다섯 어절로 간단하게 정의되지만, 청렴을 현실에서 충실히 지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때문에 예로부터 이를 준수한 관리는 살아서는 염근리(廉勤吏)로 존경받고, 죽어서는 청백리(淸白吏)로 추서되는 영광을 누렸다. "청렴한 소리가 사방에 이르고(淸聲四達) 아름다운 이름이 날로 빛나면(令聞日彰), 또한 인생 일세의 지극한 영광인 것이다(亦人世之至榮也)."라는 말이 허언은 아닌 모양이다. 조선 후기 중농학파 실학자의 거두 다산 정약용(丁若鏞) 선생의 역작 목민심서에 적힌 이 말처럼 조선시대 염근리로 선발되는 것은 정말 특별한 일이었다. 그 추천은 의정부와 육조의 2품 이상, 혹은 대사헌과 대사간에 의해서만 가능했고, 임금의 재가를 통해 녹선 여부가 최종 결정되었다. 또한 염근리는 단순히 깨끗한 공직자만은 아니었다. 근검·도덕·경효·인의 등 다른 덕목과 함께 우수한 관직 수행능력을 두루 갖추어야만 청백리로 선발될 수 있었기에, 염근리는 조선시대 가장 이상적인 관료상이었다.조선
선거 때만 되면, 투표소, 개표소 등 시설의 확보가 인력 못지 않게 어려운 일이다. 어찌보면 선거주무기관의 가장 큰 고충꺼리인 듯 하다. 법을 말하자니 주민의 시설 이용권 박탈이니, 학생의 학습권 침해니, 학교 운영상의 어려움등이 상충되니 쉽게 합의점을 도출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달리 말하면 한편의 주장만받아들여 희생을 강요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상대방의 입장도 있으니 더더욱 그렇다.요즘 학교 등 공공기관 시설의 규모도 큰 곳이 없어 이 또한 시설 확보 어려움에 한 몫 한다. 그나마 학교 및 체육관 등 공공시설 등이 큰 시설인데 불구하고도, 규모면에서도 맞아야하고, 시설 이용자의 불편 고려함에 그러한 시설을 찾기도 어렵고, 찾았다고 해도 이용자의 동의 및 승낙을 등을 양자 합의를 거쳐야하니 얻기가 쉽지 않다.이러다보니 매번 양해를 구하고, 법적인 면도 들춰내지만 우리 시설만 이용하느니, 금전적인 과다 액수를 요구하고 이를 수용할 수 밖에 없기도 하다. 시설이 많아 선택의 폭이 넗으면 모든 문제점이 해결되지만, 현실은 선택이 제한되어 있으니 매번 겪는 일이며, 상대방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비록 선거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고, 반드시 치러야하는 공적인 당
"자꾸 코치, 코치 하니까 너무 거창해요. 코치라는 말도 어려운것 같구요. 사실 요즘 유행하는 멘토도 코치와 비슷한거 아닌가요?" 참 많이 듣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한동안 멘토가 거세긴 했나봅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멘토를 찾고 있고 코치와 멘토를 같은 개념으로 보기도 합니다.그러나 멘토와 코치는 다른 개념입니다. 가장 큰 차이라면 멘토는 자신의 경험과 정신세계를 통해 상대가 해결점을 찾도록 도와 주지만, 코치는 상대가 스스로 자기 안에서 스스로 해답을 찾도록 합니다.멘토를 포함해서 인생의 길잡이가 되는 여러 분야가 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컨설턴트, 상담자, 멘토, 코치까지 어떻게 보면 비슷한것 같지만 이들은 인생을 어떻게 보느냐, 어떻게 해결책을 찾느냐에 따라 다른 입장을 취합니다.세계적인 마스터 코치인 마이클 스트래포드는 이들이 하는 일에 대해 재미난 비유를 했습니다.어떤 자녀가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한다면, 부모는 자녀의 소원대로 자전거를 사주는데, 부모가 자녀를 대하는 스타일이 여러가로 나뉜다고 이야기합니다.컨설턴트 유형의 부모는 어떻게 할까요? 이 부모는 자전거를 타는 기술를 연구합니다. 전문가를 통해 자전거를 연구
관계의 친밀함 만큼 인생에서 소중한 보물은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친밀할 때 인생의 시련을 넉넉히 이깁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과 친밀했던 다윗은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항상 그의 얼굴을 찾을지어다”라고 충고합니다.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는 개인과 민족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남왕국 아사 왕(B.C 911-870 재위)의 인생을 통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레슨을 나누어 봅시다. 언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해야할까요? 1. 위태할 때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 에티오피아 왕 세라가 백만의 대군을 이끌고 유다를 침공했습니다. 아사 왕은 전쟁을 바로 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얼굴을 먼저 구했습니다.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은 자신의 얼굴을 구한 이들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구스 사람들을 아사와 유다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