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는 셀 수 없는 고통이 있습니다. 제천 스포츠 센터 화재 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절규를 보십시오. 북한 지하 교회의 실상을 보십시오. 방글라데시로 피난온 로힝야 민족의 난민들을 보십시오. 노숙자들과 알코올 중독자들의 피폐한 삶도 보십시오. 가정이 깨어져 고통하는 이들을 보십시오. 그런데 성탄절날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기쁜 소식을 듣습니다. 인류의 모든 고통을 짊어지기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예수님은 범사에 우리들과 같이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고난 당하는 우리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멸시를 받고 버림 받았습니다. 간고를 많이 겪었고 질고를 아는 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고통 속에 있는 인류를 능
훈육을 영어로 표현하면 'Diciplin' 입니다. 즉 의지나 감정을 통해 바람직한 인격을 형성하도록 하는 교육 작용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조금 쉽게 말한다면 지식적인 것을 떠나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훈육의 기본 틀은 상과 벌에 의한 것이였습니다. 성적으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시험을 봐서 성적이 잘 나오면 부모들은 한결같이 자녀들에게 상을 주곤 합니다. 하지만 성적이 떨어졌거나 노력하지 않았을 때는 가차 없이 벌을 가함으로써 상과 벌의 상반된 모습을 잘 지켜왔습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부모의 눈에 자녀가 잘한 것보다 잘 못한 일이 더 잘 보입니다. 따라서 상보다는 벌을 더 많이 줌으로써 훈육의 무게가 벌로 기울어져 온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훈육은 곧 체벌이라는 의식이 깊이 박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를 코치하려면 훈육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코칭에서 훈육은 행동에 대한 훈육일 뿐 존재는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자녀를 훈육할 때 행동과 존재를 하나로 섞어서 훈육하는 것과 존재는 믿어주고 행동만 훈육하는 것은 자녀의 입장에서는 큰 차이가 납니다. 행동과 존재를 하나로 섞어서 훈
‘정직한 신문, 소통하는 신문, 신뢰받는 신문’을 모토로 구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구민들의 소리를 담는 신문으로사랑하는 서대문구민 여러분, 그리고 서대문신문을 사랑해 주시는 애독자 여러분,여러분들의 채찍과 사랑을 자양분으로 삼고 지내온 세월속에 서대문 구민여러분의 대변지로 거듭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서대문신문이 창간 27주년을 맞았습니다. 창간 27주년! 결코 길다고만은 할 수 없는 세월, 하지만 결토 짧다고만도 할 수 없는 세월, 그 세월을 서대문 구민들과 함께 해 온 세월이 어느 듯 27년이 되었습니다.이 긴 세월동안 서대문신문의 전통과 역사를 지켜오며 어려운 가운데서도 그 이름을 변치않고 잃지 않도록 1967년 고향을 떠나 서대문구 홍은동으로 이주하며 서울의 삶을 시작한 이래 한번도 벗어나 보지 못한 서대문구홍은동에서의 49년, 결혼하고 신혼살림을 차렸던 연희동에서의 2년, 결국 한번도 서대문을 벗어나지 않고 서대문 구민으로만 살아온 지난 51년의 세월하기에 서대문신문 발행인으로서의 삶은 내게 또 하나의 삶의 의미이기도 하다.서대문신문⋅⋅⋅서대문신문이 서대문구를 위하여, 서대문 구민들을 위하여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무엇이 진정 서대문구와 구민들을 위하는
객관성, 진실, 공공성을 추구하는 언론으로40∼50대 이상 세대라면 공유하고 있을 법한 기억들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 친구들과 논쟁을 하다가 ‘그거 신문에서 봤어’ 이 한마디면 그걸로 다툼의 승패가 결정지어졌지요. 신문은 그만큼 신뢰와 권위를 인정받았습니다.과거 신문, 방송, 잡지에 의한 단방향 정보전달 시대에서 이제는 누구나 미디어를 가질 수 있는 소셜미디어 시대가 왔습니다. 하지만, ‘신문에 나왔어!’ 라는 이 한마디가 주는 신뢰성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정직하고 소통하며 신뢰받는 신문’이란 목표 아래 정도언론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해 온 서대문신문의 창간 27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온오프라인에서 뉴스와 정보를 쏟아내는 수많은 매체들이 있지만, 서대문신문은 급변하는 언론환경 속에서 우리 서대문구를 비추는 맑은 거울로 언론 본연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해 왔습니다.지난 27년 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서대문신문이 앞으로도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역할을 잘 감당함으로써 주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지역언론으로 더욱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또 서대문신문이 오늘까지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독자 분들의 관심과 사랑이 있었기 때문일 것인데, 앞으로도 그 관심과
어두운 곳까지 훤히 밝히는 등불 같은 언론의 역할을안녕하십니까, 자유한국당 서대문갑 당원협의회 위원장 이성헌입니다.서대문구의 든든한 자치신문인 서대문신문의 창간 27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지난 27년간 서대문구의 모든 소식을 눈과 귀로 들으며 전달해주심에 언론이라는 본연의 사명을 다 하여 주신 조충길 대표님과 서대문신문 임직원 여러분 모두의 노고에 깊은 존경의 말씀을 전합니다.1990년 12월 창간하여 서대문구 지역을 위하여 가감 없는 구민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해주신 덕에 저 역시 정치적, 정책적으로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었음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또한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지역 주민과 소통하는 진정한 언론으로서 노력해주신 그간의 세월이 헛되지 않는, 영광의 창간 27주년은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며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합니다.최근 스마트폰과 더불어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청년들이 신문을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에 발 맞춰 서대문신문 역시 오랜 시간의 경험을 토대로 혁신하여 서대문구에 관심 있는 이들이 소식과 정보를 듣는 지역 언론으로서 발돋움하시기를 기대합니다.과거 일제강점기
충성, 공정, 친절, 중립 등 공직자가 지켜야 할 덕목에는 많은 것이 있지만, 청렴이 가장 소중한 덕목이 아닌가 한다. 사전 상으로는 ‘성품과 행실이 고결하고 탐욕이 없음’과 같이 열아홉 글자 다섯 어절로 간단하게 정의되지만, 청렴을 현실에서 충실히 지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때문에 예로부터 이를 준수한 관리는 살아서는 염근리(廉勤吏)로 존경받고, 죽어서는 청백리(淸白吏)로 추서되는 영광을 누렸다. "청렴한 소리가 사방에 이르고(淸聲四達) 아름다운 이름이 날로 빛나면(令聞日彰), 또한 인생 일세의 지극한 영광인 것이다(亦人世之至榮也)."라는 말이 허언은 아닌 모양이다. 조선 후기 중농학파 실학자의 거두 다산 정약용(丁若鏞) 선생의 역작 목민심서에 적힌 이 말처럼 조선시대 염근리로 선발되는 것은 정말 특별한 일이었다. 그 추천은 의정부와 육조의 2품 이상, 혹은 대사헌과 대사간에 의해서만 가능했고, 임금의 재가를 통해 녹선 여부가 최종 결정되었다. 또한 염근리는 단순히 깨끗한 공직자만은 아니었다. 근검·도덕·경효·인의 등 다른 덕목과 함께 우수한 관직 수행능력을 두루 갖추어야만 청백리로 선발될 수 있었기에, 염근리는 조선시대 가장 이상적인 관료상이었다.조선
선거 때만 되면, 투표소, 개표소 등 시설의 확보가 인력 못지 않게 어려운 일이다. 어찌보면 선거주무기관의 가장 큰 고충꺼리인 듯 하다. 법을 말하자니 주민의 시설 이용권 박탈이니, 학생의 학습권 침해니, 학교 운영상의 어려움등이 상충되니 쉽게 합의점을 도출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달리 말하면 한편의 주장만받아들여 희생을 강요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상대방의 입장도 있으니 더더욱 그렇다.요즘 학교 등 공공기관 시설의 규모도 큰 곳이 없어 이 또한 시설 확보 어려움에 한 몫 한다. 그나마 학교 및 체육관 등 공공시설 등이 큰 시설인데 불구하고도, 규모면에서도 맞아야하고, 시설 이용자의 불편 고려함에 그러한 시설을 찾기도 어렵고, 찾았다고 해도 이용자의 동의 및 승낙을 등을 양자 합의를 거쳐야하니 얻기가 쉽지 않다.이러다보니 매번 양해를 구하고, 법적인 면도 들춰내지만 우리 시설만 이용하느니, 금전적인 과다 액수를 요구하고 이를 수용할 수 밖에 없기도 하다. 시설이 많아 선택의 폭이 넗으면 모든 문제점이 해결되지만, 현실은 선택이 제한되어 있으니 매번 겪는 일이며, 상대방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비록 선거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고, 반드시 치러야하는 공적인 당
"자꾸 코치, 코치 하니까 너무 거창해요. 코치라는 말도 어려운것 같구요. 사실 요즘 유행하는 멘토도 코치와 비슷한거 아닌가요?" 참 많이 듣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한동안 멘토가 거세긴 했나봅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멘토를 찾고 있고 코치와 멘토를 같은 개념으로 보기도 합니다.그러나 멘토와 코치는 다른 개념입니다. 가장 큰 차이라면 멘토는 자신의 경험과 정신세계를 통해 상대가 해결점을 찾도록 도와 주지만, 코치는 상대가 스스로 자기 안에서 스스로 해답을 찾도록 합니다.멘토를 포함해서 인생의 길잡이가 되는 여러 분야가 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컨설턴트, 상담자, 멘토, 코치까지 어떻게 보면 비슷한것 같지만 이들은 인생을 어떻게 보느냐, 어떻게 해결책을 찾느냐에 따라 다른 입장을 취합니다.세계적인 마스터 코치인 마이클 스트래포드는 이들이 하는 일에 대해 재미난 비유를 했습니다.어떤 자녀가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한다면, 부모는 자녀의 소원대로 자전거를 사주는데, 부모가 자녀를 대하는 스타일이 여러가로 나뉜다고 이야기합니다.컨설턴트 유형의 부모는 어떻게 할까요? 이 부모는 자전거를 타는 기술를 연구합니다. 전문가를 통해 자전거를 연구
관계의 친밀함 만큼 인생에서 소중한 보물은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친밀할 때 인생의 시련을 넉넉히 이깁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과 친밀했던 다윗은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항상 그의 얼굴을 찾을지어다”라고 충고합니다.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는 개인과 민족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남왕국 아사 왕(B.C 911-870 재위)의 인생을 통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레슨을 나누어 봅시다. 언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해야할까요? 1. 위태할 때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 에티오피아 왕 세라가 백만의 대군을 이끌고 유다를 침공했습니다. 아사 왕은 전쟁을 바로 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얼굴을 먼저 구했습니다.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은 자신의 얼굴을 구한 이들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구스 사람들을 아사와 유다 사람들
풍요의 계절, 결실의 계절, 천고마비의 계절 등 온간 수식어가 동원되는 계절 10월그러한 10월답게 온 동네마다 10월은 축제의 천국이 되어 시끌벅쩍 요란한 잔치판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다.서대문구의 자랑으로 서대문구뿐 아니라 서울시민의 즐거운 놀이마당이 된 신촌 연세로에서 주말마다 벌어지는 클래식 콘서트로부터 각종 문화행사는 이미 서울시민의 신나는 휴식처가 되었다.또한 추석명절 연휴가 끝나기 무섭게 동네마다 축제의 열기가 가득하다.안산 단풍길 걷기대회, 굴레방 나눔한마당, 가좌거리 문화행사, 400회 특집 클래식 콘서트, 홍은청소년 문화의 집 마을축제, 찾아가는 클래식콘서트, 호박골 행복나눔 축제한마당, 포방터 토요장, 서대문 라인댄스 한마당 축제, 홍제천 생명의 축제, 북가좌2동 주민 운동회, 영천시장 가을축제, 2017 서대문 마을축제, 가재울 열린 콘서트, 청소년 냠냠축제 등등 헤아리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축제들이 여기저기서 벌어졌다.동네마다 어린이들의 손을 잡고 온 가족이 함께 행사에 참여해서 즐기기도 하고 잔치마다 동네 어르신들이 나와 빼곡하게 자리를 메운 가운데 신나는 노래와 즐거운 게임, 맛있는 음식이 우리를 즐거운 시간으로 이끌어 주었다.이
자녀들을 코칭할 때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게 해 주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영혼의 닭고기 스프]의 저자 잭 캔필드는 "여러분의 인생에 대해 100% 책임을 지십시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부모들은 자녀가 책임져야 할 일까지 직접 책임지고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옛날에 어떤 어머니와 아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만 바라보며 아들의 수족이 되어 전적으로 희생만 하고 살았습니다. 아들은 어머니의 비호 아래 성장했고 아무 탈 없이 평범하게 커 가는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마보이라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놀림과 따돌림을 당했고 운동을 하고 싶었지만 어머니가 만류해서 시작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아들은 어머니의 바램대로 성장하여 꽤 좋은 직업도 가졌고 가정도 이루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세상에서 최고 자랑스러운 아들로 생각했습니다.시간이 흘러 아들이 직장에서 퇴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퇴임 인사를 하기 위해 연단에 선 아들을 바라보는 늙은 어머니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들이 입을 열었습니다. 내심 어머니는 자신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기대했습니다."친애하는 사원 여러분, 저는 여러분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말이 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