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으로 성숙한 자녀는 욕구불만을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 해결합니다. 일단 한걸음 뒤로 물려나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만족을 유보하는 법을 배운 자녀들은 자긍심 있고, 주관이 뚜렷하며, 욕구불만을 건설적으로 처리합니다. 또한 자기주도적이고, 시련을 견디며, 스트레스를 받아도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자녀들은 욕구불만을 해결하는 방법을 부모에게서 배웁니다. 만일 부모가 인생에서 충족되지 않는 문제에 대해 불건전한 반응(화를 내거나 안절부절 못하는 등)을 보인다면 자녀들도 그런 식으로 행동할 것입니다. 반대로 부모가 침착하고 긍정적으로 해결책을 찾는다면 자녀도 그런 접근방식을 배울 것입니다. 자녀가 불만을 표시할 때 부모가 보여주는 반응 또한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만일 부모가 화를 내고 초조해하면, 자녀의 불만은 더욱 커지고 또 다른 해로운 감정으로 확대됩니다. 자애로운 목소리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고, 함께 상의해 해결책을 찾아보도록 해야 합니다.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는 긍정적이고 평온한 시각을 갖게 해주고,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지 지도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초까지 보릿고개를 겪었습니다. 벼의 수확량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병충해에 강하고 낟알이 두배나 많은 통일벼가 보급되자 보릿고개의 배고픔이 획기적으로 해결되었습니다. 혹시 영적 보릿고개를 경험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비어있는 쭉정이만 가득하지는 않습니까? 성경에서 ‘열매’란 삶의 행위를 뜻합니다. 우리는 열매를 따라서 심판을 받습니다. 우리가 맺은 열매는 다음 세대에 축복이 될 수 있고 반대로 이웃에게 저주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적 보릿고개를 획기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성도가 열매를 맺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성육신하신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참 포도나무요”라고 선언하셨습니다. 포도나무는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은혜와 사랑을 부어주셨지만 그들은 악한 열매만 맺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실패했지만 예수님은 참된 이스라엘이 되셨습니다. 이를 위해 창조주이신 그분이 친히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 세상 그 어떠한 사람도 맺지 못한 인격적 열매를 예수님은 풍성히 맺으셨습니다. 예수님처럼 사는 삶을 가리켜 경건이라고 말합니다. 경건의
소년의 아버지는 6.25 전쟁 때 한쪽 다리를 잃어 목발을 짚는 장애인이었고, 어머니도 한쪽 눈은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었습니다. 몸이 불편하신 부모님이 꾸리는 과일 노점상만으로는 생계가 어려워 이 소년은 고작 12살 때부터 새벽 4시에 일어나 신문 배달을 했지만, 한 달에 2만을 벌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서는 가구를 배달하면서 장애를 가진 부모님을 위해 열심히 돈을 벌었지만, 여전히 집안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엎친 데 덮친다고 소년이 21살이 되어 청년이 되었을 때, 불편한 몸으로 평생 궂은일만 하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는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신문 배달을 하던 어린 시절부터 '역경이 없으면 개척할 운명도 없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누구라도 좌절할 것 같은 힘든 상황 속에서도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희망을 나눠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가난과 절망 속에서도 꿋꿋하게 이겨낸 청년은 2005년 마침내 꿈에 그리던 소방공무원 채용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사연의 주인공은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중랑소방서에 근무하는 이성식 소방장입니다. 이성식 소방장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2019학년도
실수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자녀의 발전과 성취에 중요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실수는 인생의 일부이다. 중요한 것은 실수에 반응하는 방식이다" 라고 시인 니키 지오바니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들은 종종 자녀들에게 실수는 나쁜것이고, 실수를 하면 큰 일이 벌어질 것처럼 느끼게 만듭니다. 그래서 자녀들은 사소한 실수조차 두려워하게 되고, 실수를 하면 부모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무능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부모들과 자녀들은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수시로 실수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수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운동경기, 무용공연, 음악회, 과학탐구 등 어떤 분야의 최고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도 자주 실수합니다. 하물며 자녀들은 실수를 할 수 있을뿐 아니라 실수를 해봐야 합니다. 위대한 성공자가 되는 것은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수에 반응하는 방식에 달려 있습니다. "실수는 학습과정에서 불가피한 부분이다.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혹은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라는 속담은 진부하지만 진리를 말하고 있다. 실패를 경험하면서 자녀들은 탄력적이 되고 예사로운 실패에 좌절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라고 프랭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뿐만 아니라 더 풍성한 생명을 누리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원으로 살아가지 않고 하늘의 자원으로 살아갑니다. 비록 인생 시련이 있다고 하더라도 기쁨과 소망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믿음의 삶을 ‘청종’의 삶이라고 말합니다. 인생미래는 청종의 삶을 통해서 완성되어 갑니다. 어떻게 매일 청종의 삶을 이룰 수 있을까요 1.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묵상하라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계속 전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라는 증거를 대보라고 윽박지르자 예수님은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이라고 대답하셨고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을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생각하고 alee을 대 우리는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을 깨닫습니다. 우리도 시련 때문에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약해질 때가 있습니다.
己亥年 새해 아침 서대문구민 모두에게 건강과 새로운 희망이 넘치는 멋진 한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2019년은 己亥年은 기(己)가 토(土)에 해당하여 색으로는 황금색을 뜻하고 있고, 해(亥)는 12번째의 마지막 동물인 돼지이기 때문에 올해 2019년을 황금 돼지의 해라고 불린다. 또한 풍요를 상징하는 '황금'과 '돼지'가 함께 어우러진 해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올해는 행운의 의미를 많이 부여하고, 더욱 풍요로워질 삶을 기대하며 희망의 끈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꿈에 돼지를 보면 재물을 얻거나 횡재를 한다고 믿어 복권을 사는 것처럼, 돼지는 예로부터 하늘에 바치는 신성한 제물인데다, 돼지를 집안에 부를 가져다주는 동물로 생각하는 등 돼지는 우리와는 뗄레야 뗄수없는 소중한 재산 그 이상의 의미를 우리에게 주고 있는 동물이다. 이렇듯 60년에 한번 돌아오는 황금돼지띠가 회갑을 맞는 특별한 한해이기에 모든 이들이 알게모르게 더 많은 희망을 갖는지도 모를일이다. 우스개 소리로 각 복권가게마다 매상이 지난해보다 훨씬 높다는 것 또한 재미있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일까 해마다 교수연합회에서는 새해의 문을 여는 사자성어를 발표하는데 올해 대학교수들이 선정한
주님은 작은 자이든 큰 자이든 인생을 인도해 주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목자이시고, 우리는 목자의 인도함을 받는 양들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새해가 되었어도 세상은 달라 진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새해를 향한 기대감이 있습니다. 목자되신 예수님이 우리 인생을 친히 인도해 주시기 떄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갈 때 상상할 수 없는 기쁨과 감격과 열매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왜 목자 예수님을 따라가야 할까요? 1. 무한한 가치로 나를 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자신의 생명보다 양을 더 가치 있게 여기십니다. 우리가 죄인이고 연수였지만 목자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무한한 사랑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이 나를 무한한 가치로 알아주신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도 주님을 위해 자신을 기쁨으로 바치게 됩니다. C.T 스터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며 나를 위해 죽으셨다면 그분을 위한 나의 어떤 희생도 결코 그다고 할 수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누가 나를 무한
2000년전 성탄의 소식은 불임 부부, 미혼모, 비정규직 목동들, 과부, 식민지배를 받는 백성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듣고 기뻐했습니다.성탄의 기적을 경험한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1. 수치를 고백하는 자오랫동안 자녀가 없는 엘리사벳이 자녀를 선물로 받자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라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엘리사벳 부부는 오랫동안 수치를 가지고 기도를 드렸습니다.기도란 고상한 말과 미사여구가 아니라, 자신의 수치를 감추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의 부끄러움과 불명예를 있는 그대로 아뢰는 것이 기도입니다. 다윗처럼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수치는 오직 예수님만이 품고 위로해주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친히 수치를 겪으셨기 때문입니다.예수님은 전능자이셨지만 스스로 약한 자가 되셨습니다. 만물의 창조주께서 연약한 아기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잘못한 것이 없었지만, 침 뱉음을 받으셨습니다. 불의한 재판을 받으셨고, 발가벗겨진채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구경거리가 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구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구민들의 소리를 담는 신문으로서대문신문의 오늘이 있기까지 조언과 질책을 아끼지 않았던 많은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많은 이들의 조언과 질책, 아낌없는 후원을 자양분으로 삼고 구민 여러분을 대변하는 지역언론으로 올곧게 서기 위해 한발한발 디뎌온 발걸음이 어느 듯 28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창간 28주년! 결코 짧지 않은 시간, 그 시간, 그 세월의 무게를 제대로 감당하고 있는지 조금은 부끄러운 마음으로, 아니 안타까운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봅니다.정론직필 이니, 공론창달이니 하는 말들은 나이 몫이 아닌 일간지나 대형 언론들의 몫이지 지역신문인 나로서는 그저 지역의 소식이나 다양하게 알리면 되는 것 아니냐는 자위도 하면서 주민들의 안타까운 목소리를 애써 외면했던 지난 시간들은 아니였는지, 28년의 세월 중 나와 함께 한 세월은 불과 4년, 하지만 현재의 서대문신문은 나의 모습이 투영된 또 하나의 나 임을 생각해 보면 두려움이 앞서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과연 서대문신문이 서대문 구민들의 목소리를 올바로 전달해 왔는지, 구민들의 알 권리를 얼마나 충족시켜 주었는지, 구민들의 가려운 부분을 얼마나 시원하게 긁어 주었는지, 아픈 부분은 얼마
서대문 가족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서대문신문 기자단장 김종현입니다.서대문신문이 어느새 창간 28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서대문주민으로서 축하드리며, 서대문신문의 기자단장으로서 자축하는 바입니다.오늘날 사랑받고 신뢰받는 언론으로 서기까지 많은 애를 써주신 김정철 자문위원회장님과 자문위원님들, 그리고 기자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아울러 지역신문으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시고, 오랜기간 은평지역 언론사로서의 운영노하우를 가지고 서대문에서도 그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자 노력해주고 계신 조충길 사장님의 열정과 헌신에 감사드립니다. 서대문신문은 그동안 서대문구의 구정을 소개하고 주민생활에 필요한 각종 생활정보를 제공하는 등 지역사회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 왔으며, 건설적인 비판과 대안제시를 통하여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는 등 서대문구를 대표하는 지역신문으로 성장하여 왔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서대문신문과는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데, 부족한 저에게 때로는 서대문신문 이사역할로, 때로는 기자단장을 맡겨 주신데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기자단장으로서 많은 역할을 하지 못해 사장님과 서대문신문 가족 여러분들께 송구할 따름이지만, 부족한 힘이라
흔히들 삶에 있어 '얼마나 빨리 가느냐'보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가 중요하기에 '시계'보다 필요한 것이 '나침반'이며 또 나침반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거울이 꼭 필요하다고 합니다.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늘 돌아볼 수 있어야 과오를 바로잡아 나갈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깊이 있는 통찰과 혜안으로 이 같은 나침반과 거울의 역할을 잘 맡아 온 ‘서대문신문’의 창간 28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올바른 목적을 가진 사회, 자기반성과 검증을 할 수 있는 지역이라야 발전할 수 있으며, 이를 가능하도록 해주는 중요한 주체가 언론입니다. 우리 주변에 많은 매체들이 있지만, ‘서대문신문’은 ‘정직한 신문, 소통하는 신문, 신뢰받을 수 있는 신문’이라는 모토에서도 느낄 수 있듯 언론 고유의 사명감과 독자에 대한 책임감으로 저널리즘을 구현해 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독자들에게 ‘서대문신문’의 정체성을 뚜렷이 각인시켜 주었음은 물론입니다.서대문신문 홈페이지에서 ‘관은 민을 신뢰하고 민은 관을 신뢰하며 민과 민이 서로 신뢰하는 서대문구를 위해 가감 없는 소리를 전하겠으며 구석구석 구민의 소리를 담기 위해 부지런함을 잃지 않겠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이 글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