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지도자가 다스리면 백성은 행복해집니다. 나쁜 지도자가 다스릴 때 백성은 불행해집니다. 참된 지도자는 백성을 사랑하고, 정직하며, 비전과 실력이 있고, 정의와 인애를 겸비합니다.
사사기 11장에서 입다라는 지도자는 이스라엘을 이방 족속에게서 해방시킨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입다의 실패를 더 많이 기록했습니다. 그는 전쟁 전에 경솔하게 서원 기도를 드렸습니다.
딸이 잘못된 서원의 헛된 제물이 되었습니다. 입다와 에브라임 사이에 갈등이 생겼고, 입다와 그 군대는 무려 42,000명을 학살했습니다.
지도자 입다에게는 평화가 없었습니다.(삿 12:7) 헛된 야망과 살육만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가정과 일터와 교회에서 작은 지도자로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성공하고 있는 지도자일까요?
지도자의 실패와 성공은 무엇에 달려있을까요?
1. 하나님을 조종하는가? 섬기는가?
“이에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삿 11:29) 입다는 성령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통제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위해 하나님도 조종하려고 했습니다. 입다가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욕구를 위해 하나님을 조종하려고 했습니다. 무속신앙처럼 하나님을 이용하고자 했습니다. 우리 죄성은 하나님을 섬기기보다 그의 능력을 조종하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보다는 내 뜻과 욕심을 관철시키고자 합니다. 교만과 불신을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성령과 기쁨으로 동행해야 합니다.
2. 잘못을 인정하는가? 고집하는가?
성경은 자녀를 제물로 바치는 것을 엄격히 금지했습니다.(레 18:21) 입다는 성경 말씀을 알지 못했습니다. 자기 딸이 나와서 자신을 맞아 주었을 때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입다는 자신의 고집속에 머물렀고 오히려 딸을 원망했습니다.(삿 11:34-35) 그는 자기 잘못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입다는 자기 눈 앞에서 딸이 죽는데도 자신의 잘못된 신념에 매여 있었습니다. 그의 고집과 완고함 때문에 가족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수많은 동족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교회는 성공한 자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교회는 잘못을 인정하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하나님 잘못을 깨달을 때 즉시 인정하게 하소서.’라고 간구합시다.
3. 갈등을 중재하는가? 일으키는가?
12장에서 에브라임 지파와 입다 사이에 큰 갈등이 생겼습니다. 입다는 에브라임과의 갈등을 중재하지 않았습니다. 입다는 에브라임을 정죄했고 다시 군대를 소집했고, 이방민족을 학살하듯이 동족을 죽였습니다. 무려 42,000명의 에브라임 지파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입다는 자신의 생각과 조금도 다른 이들을 무자비하게 심판했습니다. 입다의 실패는 삼손에게서 절정으로 치닫습니다. 이처럼 사사기는 참된 왕을 찾을 수 없다고 비관적으로 마무리합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
입다는 자신의 야심을 위해 딸을 희생시켰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자유를 위해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죄인과 하나님을 화해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않으시고 섬기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참된 지도자이십니다.
예수님의 온유를 따르십시오. 심판과 정죄가 아니라 진실과 화해를 향해 나아가십시오. 탐욕과 정죄로 분열된 나라를 예수님 안에서 치유하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