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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여성과 산업] ②가정 경제, 화장품 산업을 이끈 ‘방판 아줌마’

삼삼오오 모인 여성들이 얼굴에 마스크팩을 얹고 수다를 떤다. 화장품 방문판매원은 누워있는 여성의 얼굴을 마사지하면서 어떤 화장품이 왜좋은지 열심히 설명한다. 이는 80~90년대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풍경이었다.

 

당시 화장품 구매의 주된 유통경로는 방문판매였다. 고객 집을 직접 방문해 개개인에게 최적의 카운슬링을 통해 상품 구매를 도와주는 유통 시스템으로 국내 화장품 업계 유통구조에 큰 획을 그었다.

 

◇ 화장품 시장 성장에 획을 그은 방문판매

 

60년대 초 태평양(현 아모레퍼시픽) 등과 같은 화장품 제조업체가 등장하며 판매원을 직접 채용하는 방문판매 형태가 시작됐다. 방문판매는1962년 쥬리아 화장품이 처음도입했다. 뒤를 이어 아모레퍼시픽, 한국화장품, 김정문알로에, 남양알로에, 로제화장품 등이 뛰어들었다.

 

방문판매는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국내 화장품의 주요 유통경로였다. 80년대 중반까지는 국내 화장품 유통의 90% 이상을 점유했다.

 

그러나 80년대 중반 화장품 전문점이 급성장하면서 한때 위축되기도 했으나 90년대 중후반 화장품 회사들이 조직을 정비하고판매원에 대한 선진 영업 방식을교육하고, 고가의 방문판매 고유 브랜드를 도입하면서다시 급성장했다.

 

태평양은 96년을 기점으로 대대적인 조직 정비와 판매사원의 증가, 방문판매 전용 제품 개발과 판매 인센티브 도입으로 방문판매 시장을 활성화했다.한국화장품도 조직 재정비와 더불어 판매원 승급제도를 마케팅 시스템에 도입시키며 영업 기반을 확충했다.

 

 

90년 초에는 방문판매 방식이 신 방문판매와 구 방문판매로 나뉜다. 산 방문판매는 80년대 말 코리아나가 처음 도입해 90년대에 크게 성공했다.

 

기존의 방문판매는 메이커→대리점→판매사원→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시스템이라면 신 방문판매는 메이커→판매사원→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체재로 유통단계가 1단계 축소됐다.

 

96년 방문판매는 소비자가 기준으로 3500억원 규모였고, 97년 4500억원으로 28.6%로 높은 성장세를 유지했다.

 

2001년도 이후에는 전문점을 주요 경로로 하는 시판 시장이 위축되면서 방문판매는 활성화됐고, 방문판매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업체들이 증가했다. LG생활건강도 2002년 4월 방문판매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었으며 방문판매 시장 규모는 계속해서 크게 성장했다.

 

◇ 경제 전선에 뛰어든 주부들

 

60년대부터 시작됐던 화장품 방문판매는 여성의 몫이었고, 특히 주부들의 참여 비율이 높았다. 한국전쟁 이후 여성들은 가정경제를일으키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1997년 이후에는 IMF로 인해 국내 경제가 타격을 입으면서 직장을 잃은 남성들이 늘었고, 여성들은 또다시 가정을 위해 경제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한국여성개발원에 따르면 1980년 한국 기혼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40%에 육박했다.

 

특히 IMF 이후 많은 여성이 판매직에 진출했는데, 중앙고용정보관리소의 여성 취업자 조사에 따르면 2000년에 취업한 기혼여성의 80%는 판매 서비스직과 단순노무직에 종사했다.

 

당시 기혼여성의 재취업 기회는 극히 제한돼 있었다. 학력이나 능력을 갖추고 있어도 노동시장에서 한번 탈퇴하면 재진입이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비정규칙 채용을 늘리는경향이 늘었고, 자녀 양육기를 거친 기혼여성들은 재취업 시 손쉽게 취업할 수 있는 판매직을 선호했다.

 

기업들은 이런 여성인력을 활용해 방문판매 유통을 활성화했고, 방문판매가 급성장하면서 기혼여성 취업의 새로운 영역이 됐다.

 

그중에서도 화장품 방문판매 사업은 여성의 특성을 잘 발휘할 수 있는 분야였다. 주부들이 주고객층이었기 때문이다.

 

주부들은 화장품 방문판매에 관심을 갖게 되고, 자녀의 성장 이후 가계 보탬이나 자녀의 교육비 마련 등을 위해 사회에 참여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화장품 방문판매를 선택했다.

 

주부 A씨도 빠듯한 가정에 도움이 되고자 2007년부터 화장품 방문판매를 시작했다.

 

“돈은 벌어야 하고 가정도 돌볼 수 있는 자유업이 필요했어요. 지인 화장품 대리점에서 경리를 봤었는데, 아는 게 화장품이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어 화장품 방문판매를 선택했습니다.”

 

방문판매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가꿔주고 그것을 통해 삶의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물론 사회생활 참여기회를 제공해 여성들에게는 좋은 일자리로 자리매김했다.

 

A씨는 “방문판매제품들은 시중에서 파는 제품과 달라요. 가격대가 비싼 편이긴 하지만 좋은 물건을 판다는 자부심이 있었어요. 고객들이 내가 추천해준 제품을 통해 피부가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뿌듯하죠”라고 말했다.

 

방문판매의 특성상 얼굴을 맞대다 보니 고객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깊은 속 이야기까지 꺼내게 되며 정을 쌓아간다. 또 방문판매원은 한 번 인연을 맺게 되면 고객을 꾸준히 관리한다. 안부 전화도 하고 필요한 것이 있는지 물어보면서 계속 관계를 맺어간다. 그렇게 쌓아간 관계는 신뢰를 형성하고, 신뢰는 다시 판매로 이어진다.

 

A씨는 “제품이 꼭 필요하지 않으면 적극적으로 판매를 권유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저를 믿고 제품을 구매해주셨어요. 또 워낙 화장품이 인기 있다 보니 잘 팔리기도 했어요”라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은 2008년에 방문판매를 공격적으로 확대하면서 차별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2007년 3만2000명 방판 인력을 2010년 3만8000명까지 늘렸고, 매출 규모를 2007년 4980억원에서 6000억원 이상까지 끌어올렸다.

◇ 화장품 방문판매, 시대 흐름에 맞게 변화

 

2000년, 유통채널의 다양화, 인터넷의 등장 등 디지털시대가 도래하며 면대면으로 진행됐던 방문판매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에 방문판매도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새로운 방식을 도입한다.

 

아모레퍼시픽은 업계 최초로 2003년 ‘PDA(개인 휴대 단말기)’를 도입해 방문판매를 디지털화했다. 이를 통해 방문판매는 고객 로열티를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영업 채널로 거듭나게 됐다.

 

이전까지만 해도 최종 소비자가 누구인지, 어떤 구매자가 사는지 확인하기 어려웠다면 PDA를 통해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더욱 빠르게, 보다 정확하게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는 영업전략을 전개할 수 있게 됐다.

 

또 방문판매원의 이미지를 전문적인 카운셀러로 개선했다. 아모레퍼시픽은 고객 접점에서 활동하는 아모레 카운셀러의 영업역량을 높이고, 기존고객의 구매를 확대하는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고객관계관리) 전략에 집중했다.

 

◇ 사드, 코로나19 타격…위기에 처한 방문판매

 

2010년대, 한류 열풍은한국 화장품 시장의 성장을 견인했다. 화장품 방문판매 역시 중국의 한류 열풍 덕을 톡톡히 봤다.

 

A씨는 “중국 소비자들에게 한국 화장품이 인기를 끌면서 당시 방문판매 대리점 한 달 매출이 5~6억 정도 됐어요. 대리점에서 함께 일하는 방문판매원들도 80명 이상이었어요.”

 

하지만 2016년 정부가 한반도 내 사드 배치를 공식화면서 양국 관계가 악화하자화장품 산업은 큰 타격을 입었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이 더해지며 화장품 방문판매는 빨간불이 켜졌다. 방문 자체를 꺼리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방문판매원들이 갈 길을 잃었다.

 

“80명 되던 방문판매원들이 지금은 30명도 안 돼요. 사드 이후로 중국 손님들이 모두 빠져나갔고, 코로나 이후로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만남이 줄어들면서 판매가 급격하게 감소했어요. 또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다 보니 색조 화장품 판매까지 줄어들었어요.”

 

사드와 코로나19 문제 외에도 온라인 시장이 발달하며 방문판매 경쟁력이 줄어들었다. 2015년 전후 온라인화가 빠르게 전개됐고, 코로나19는 이를 더욱 급속화했다.

 

아모레퍼시픽의 경우 방문판매가 화장품 사업 부문에서 차지하는 매출과 영업이익 비중이 2013년 당시 30%에 근접했다. 방문판매는 중소도시와 백화점 쇼핑이 어려운 고객이 대상이었다.

 

하지만 온라인은 지역적·시간적 한계가 없어 방문판매 수요와 상충한다. 변화를 외면할 수 없었던 화장품 업계도 방문판매에서 온라인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온라인 채널을 공격적으로 전개하면서 성과를 거뒀다. 이에 채널 전략의 무게 추를 방문판매와 백화점 등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기고 있다.

 

지난해 아모레퍼시픽은 온라인 매출과사업 체질 개선의 효과로 영업이익이 대폭 증가했다. 특히 국내에서는 온라인 매출이 약 40% 성장했다.

 

A씨는 “이제는 미디어 세상이어서 방문판매는 계속 어려워질 것 같아요. 이제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제품을 구매하려고 하지 얼굴을 보고 사려 하지 않아요. 자유롭게 일할 수 있고 저 같은 주부도 장벽 없이 일할 수 있었는데 세상이 변하니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졌어요”라고 말했다.

 

유통구조의 변화,주변 환경의 영향으로 방문판매 비중이 점점 줄어드는 가운데 일부 화장품 업계는 방문판매 유지를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디지털 대전환을 이루되 방문판매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은 2022년 신년사를 통해 “디지털 기술을 통해 방문판매 등 오프라인 채널의 경쟁력을 회복하고, 맞춤형과 비대면 솔루션 등 미래 성장의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방문판매 형식을 도입한 코리아나 화장품 역시 방문판매를 강조했다. 유학수 코리아나 대표이사는 “R&D 역량 강화와 함께 비대면 환경에 대응한 방문판매 활성화, 온라인 성장, 해외시장 확대, 소셜 미디어의 효율적 활용 등을 과제로 삼고 새로운 마케팅 전개에 집중하겠다”라고 말했다. <기사제공 : 우먼타임스 심은혜 기자>

<사진1 설명>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 당시 화장품 구매의 주된 유통경로는 방문판매였다. (tvN)

 

<사진2 설명>아모레퍼시픽은 1964년 방문판매 제도를 도입하고, 전용 브랜드 아모레를 출시했다. (아모레퍼시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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